
[브리프온=고인영 기자]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장찬)는 20일 오후 2시, 6년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의안 접수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2000만원, 국회법 위반 혐의로 벌금 4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총 2400만원의 벌금형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1000만원, 국회법 위반 혐의로 벌금 150만원 등 총 1150만원을 선고받았다.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1500만원, 국회법 위반 혐의로 벌금 400만원 등 총 1900만원이 선고됐다.
함께 기소된 김정재·윤한홍·이만희·이철규 의원도 벌금 550만~1150만원을 선고받았다.
■ 국회법 위반 벌금 500만원 미만…의원직 상실 요건 불충족
이번 선고로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6명은 모두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국회법 166조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 이상이 선고된 경우 의원직이 상실된다. 이번 재판에서 피고인들에게 선고된 국회법 위반 벌금은 모두 400만원 이하로, 의원직 상실 기준인 5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 결심공판에서 나 의원에게 징역 2년(채이배 의원 감금 혐의 1년 6개월, 국회법 위반 6개월)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벌금형을 선택했다.

■ 재판부 “불법 수단 동원한 죄책 가볍지 않아”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면책특권, 저항권 행사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국회의원 신분인 피고인들이 합법적인 수단이 아닌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동료 의원의 입법 활동을 저지했다”며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해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고 비난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들은 쟁점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는 비교적 중하지 않고 대체로 상대방의 출입을 막아서는 등 간접적인 형태로 진행됐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사건 발생 이후 2020년 4·15 총선, 2022년 6·1 지방선거, 2024년 4·11 총선 과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며 “국회 내 정치적 행위의 성격상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나경원 “정치적 항거 명분 인정받아”…야당 “법원, 물리력만 책임 물어”
선고 직후 정치권의 해석은 엇갈렸다.
나경원 의원은 법정을 나서며 “정치적 항거의 명분이 인정됐다”고 밝혔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강행에 대한 불가피한 저항이었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무죄가 아니어서 아쉽다”며 “법정에 올 사안이 아니었고, 민주당의 강행이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도 “징역형 구형 자체가 무리였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하지만 판결문 어디에도 ‘명분’이나 ‘정치적 항거 인정’이라는 표현은 없다. 재판부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국회에서의 물리력 행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만 분명히 했을 뿐이다.
■ 2019년 4월 충돌…6년 7개월 만의 1심 선고
이번 사건은 2019년 4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며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을 의원실에 감금하고, 의안과 사무실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장을 점거해 법안 접수 업무와 국회 경위의 질서유지 업무 등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2020년 1월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진 27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중 고(故) 장제원 의원은 지난 4월 사망으로 공소가 기각됐다.
사건 발생 6년 7개월 만에 나온 이번 1심 선고로 의원직은 모두 유지됐지만, 항소 여부에 따라 정치적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