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턴=고인영 기자]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연달아 발생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20년 만에 특정됐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수년 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에 따르면 경찰은 2005년 6월과 11월 신정동의 한 빌딩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범행 당시 빌딩 관리인이던 60대 남성 A씨로 특정했다.
■ 동일 장소서 두 차례 범행…수법도 유사
2005년 6월 6일 휴일, 20대 여성 B씨는 감기 증세로 빌딩 내 병원을 찾았다가 문이 닫혀 있자 돌아 나가려 했다. 이때 A씨가 “출구를 안내하겠다”며 접근해 지하 1층 창고로 끌고 갔다.
경찰은 A씨가 B씨의 금품을 강탈하고 성폭행한 뒤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B씨에 대한 검시 결과에서도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로 나타났다.
A씨는 시신에 쌀 포대 두 개를 씌워 노끈으로 묶은 뒤, 같은 날 밤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인근 노상 주차장에 유기했다. 시신은 이튿날 쓰레기 무단 투기 현장을 단속하던 공무원이 발견했다.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40대 여성 C씨가 친정에 간다며 나간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경찰은 C씨가 같은 빌딩을 방문했다가 A씨에게 붙잡혀 지하 1층 창고로 끌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C씨를 수차례 폭행하고 성폭행한 뒤 나일론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시신을 비닐과 돗자리에 감싸고 나일론 끈으로 결박한 뒤 자신의 승용차로 운반해 인근 주택가 노상 주차장에 유기했다. B씨와 C씨는 발견 당시 동일하게 쌀 포대, 비닐로 각각 씌워진 뒤 섬세한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 8년 수사 끝 미제사건 전환…2016년 재수사 착수
두 사건 발생 이후 서울 양천경찰서는 38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려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했다. 현장 증거물 감식과 유전자 감정, 전과자 대조, 수배전단 9000매 배포 등을 실시했다. 시신에서 모래가 나온 점에 착안해 공사 현장을 탐문하고, 범행에 사용된 쌀포대와 비닐, 전선 등의 유통 경로도 수사했다.
하지만 수사팀은 8년간 수사를 이어갔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결국 2013년 6월 미제사건으로 관리 전환했다.
2016년 서울경찰청이 미제사건 전담팀을 신설하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전담팀은 수사 기록 및 증거물을 인수받아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현장 증거물 재감정을 의뢰했다.
■ 유전자 분석 기법 발전으로 돌파구 마련
2020년 유전자 분석 기법이 발전하면서 1·2차 사건의 증거물인 속옷 및 노끈에서 동일한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두 사건의 피의자가 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현장을 수백 차례 탐문하고 동일 수법 전과자, 통신 기록 및 신정동 전·출입 기록 등을 분석해 총 23만1897명의 수사 대상자를 선정했다. 범행 수법과 시간, 직업, 거주 형태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피의자가 조선족일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인터폴 국제공조를 통해 DNA를 대조했다.
그러나 일치하는 DNA를 확인하지 못하자, 경찰은 사망자 주변으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신정동 거주 및 직장 경력 △피해자 주변인 △설비·인력·공사·봉제업 종사자 △독립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직업 △살인·성폭력 등 전과 3차례 이상 △주간·휴일 및 특정일 범행 △사망(자살) 원인 부자연스러운 대상자 등의 기준으로 이미 숨진 56명을 조사했다.
■ 보관된 검체에서 결정적 증거 확보
그 과정에서 양천경찰서 기록 보관실 3차 수색을 진행했고, 2006년 2월 강간치상 혐의로 체포된 A씨가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은 A씨가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당시 1·2차 사건 발생 장소인 빌딩 관리인으로 근무한 사실을 파악해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하지만 A씨는 2015년 7월 암으로 사망한 뒤 화장 처리돼 유골 확보가 불가능했다. 경찰은 A씨가 생전 거주한 경기 부천·광명·시흥 지역의 병·의원 및 검체 검사업체 등 40곳을 탐문한 끝에 A씨의 검체(인체 유래물)를 보관하는 곳을 찾아냈다. 압수 영장을 집행해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를 확보했다. 올해 8월 국과수 감정 결과 A씨의 DNA가 두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재소자 증언·유사 사건 재조사로 확증
경찰은 A씨가 2006년 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재소자 10명 등을 탐문해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재소자 탐문에서는 A씨에 대해 “60대임에도 불구하고 180cm의 단단한 체격이었고 노역 당시 노끈 매듭을 깔끔하게 잘한다”는 진술이 나왔다.
또한 2차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006년 2월 동일 장소에서 유사 수법으로 성범죄를 시도한 뒤 검거된 사건의 피해자를 재조사해 범행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A씨를 범인으로 특정했다.A씨는 1·2차 사건 이전에도 성범죄 등 강력범죄 3차례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경찰은 A씨가 사망한 상태인 만큼, 관련 자료를 종합해 조만간 이 사건을 불송치(공소권 없음)로 종결할 예정이다.
■”범인의 생사 관계없이 끝까지 진실 규명”
신재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4팀장은 “앞으로도 경찰은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 미제 사건의 진실을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끝까지 규명하겠다”며 “오랜 시간 경찰을 믿고 기다려주신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A씨가 2006년 5월에 발생한 이른바 ‘엽기토끼 사건’과는 동일한 범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A씨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엽기토끼 사건’은 2006년 5월 임시공휴일, 한 여성이 신정역 일대 반지하 원룸으로 남성에게 끌려갔다가 도주한 사건으로, 피해 여성이 건물 내부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진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해시태그
#신정동연쇄살인, #장기미제사건, #DNA감정, #서울경찰청, #부녀자살인사건, #미제사건전담팀, #엽기토끼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