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 양념치킨 개발…치킨무까지 만든 한국 치킨 산업의 개척자
[뉴스턴=고영우 기자] 세계 최초로 양념치킨을 개발한 윤종계(尹種桂) 맥시칸치킨 창립자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한국 치킨 문화의 흐름을 바꾼 인물의 별세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며 업계와 소비자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서 시작된 ‘양념치킨 혁명’
8일 유족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종계 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5시께 경북 청도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인쇄소를 운영하다가 사업 실패를 겪은 뒤, 1970년대 말 대구 효목동에서 *‘계성통닭’을 열며 치킨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이 주류였던 당시, 그는 1980년대 초 양념치킨을 처음 개발했다. 이후 1985년 토종 브랜드 ‘맥시칸치킨’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키며 전국적인 양념치킨 붐을 일으켰다. 이 영향으로 대구는 지금까지도 ‘양념치킨의 메카’로 불린다.
김치에서 물엿까지…6개월간의 실험
윤 씨는 2020년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양념치킨 탄생 비화를 직접 밝혔다. 그는 “치킨이 식으면 비릿하고 퍽퍽해 손님들이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결책을 찾던 중 김치 양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김치 양념은 실패로 끝났고, 동네 할머니의 조언으로 물엿을 넣으면서 맛의 균형을 잡았다. 그는 “6개월 넘게 매일 레시피를 만들고 실패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완성된 붉은 양념소스와 염지법은 이후 한국식 치킨의 표준이 됐다.
손에 묻어도 “맛있으면 먹는다”…폭발적 인기
초기에는 “손에 양념이 묻는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반응이 엇갈렸지만, 윤 씨는 무료 시식과 프라이드치킨에 양념치킨을 조금 얹어주는 방식의 마케팅으로 인식을 바꿨다. 몇 달 만에 입소문이 퍼졌고, 하루 수십 팀이 몰려 가게 주변에 돗자리를 깔 정도로 인기가 폭발했다.
윤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흔히 돈을 갈퀴로 모은다고 하는데, 나는 불도저로 돈을 밀어 벌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치킨무까지 만든 ‘한국 치킨 문화 설계자’
윤종계 씨는 치킨무의 원조로도 알려져 있다. 치킨을 먹으면 목이 막힌다는 점에 착안해 무와 오이에 식초와 사이다를 넣어 곁들였고, 이것이 오늘날 치킨무로 자리 잡았다.
1980~90년대 맥시칸치킨은 한때 전국 1700여 개 가맹점을 운영했으며, 국내 최초로 치킨 TV 광고를 시도하는 등 프랜차이즈 산업의 선구적 모델을 제시했다.
고인이 만든 양념치킨은 수많은 브랜드로 확산돼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업계에서는 윤종계 씨를 두고 “한국 치킨 산업의 기초를 설계한 인물”, “양념치킨의 아버지”로 평가하고 있다
‘특허’는 남기지 못한 아쉬움
양념치킨이라는 거대한 발명을 남겼지만, 윤 씨는 관련 특허를 확보하지 못했다. 만약 특허를 취득했다면 막대한 로열티 수익이 가능했을 것이란 아쉬움도 뒤따른다. 다만 음식 레시피는 특허 등록이 까다롭고, ‘양념치킨’이라는 명칭이 보통명사화됐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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