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2월 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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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의 청춘에서 ‘한산’의 노장까지…한국 영화사 ‘안성기 시대’ 막 내리다

[뉴스턴=고영우 기자]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5세에 데뷔해 69년간 스크린을 지켜온 그의 긴 여정과 함께, 한 시대를 관통한 ‘안성기 시대’도 막을 내렸다.

영화계에 따르면 안성기는 지난해 12월 30일 심정지 상태로 서울 순천향대병원 응급실에 이송된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혈액암 투병 끝에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5세 데뷔…아역에서 국민 배우로

1952년 1월 1일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안성기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를 통해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하녀’, ‘얄개전’, ‘젊은 느티나무’ 등을 거치며 한국 영화의 성장기와 함께 배우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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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배우로서 본격적인 전환점은 1980년대였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현실을 꿰뚫는 연기로 주목받았고,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안개마을’로 깊이 있는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고래사냥’에서 ‘투캅스’까지…흥행과 작품성의 교차점

안성기의 필모그래피에서 배창호 감독과의 만남은 빼놓을 수 없다. ‘꼬방동네 사람들’, ‘적도의 꽃’, 그리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고래사냥’ 시리즈는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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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하얀전쟁’으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했고, 강우석 감독과는 ‘투캅스’, ‘실미도’ 등을 통해 상업 영화 흥행의 정점을 함께했다. 특히 박중훈과의 호흡은 한국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흥행 조합으로 남았다.

 

세대를 넘어 이어진 존재감

2000년대 이후에도 안성기의 존재감은 흐려지지 않았다. ‘무사’, ‘취화선’, ‘부러진 화살’, ‘사냥’ 등에서 중심을 잡았고,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노장으로서의 무게감을 선명히 남겼다.

그는 선과 악,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역할에 온전히 스며드는 배우였다. 시대가 바뀌고 영화의 문법이 달라져도, 안성기는 늘 스크린 한가운데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배우 이전에 사람”…후배들이 기억한 안성기

연기력뿐 아니라 인품 역시 안성기를 ‘국민 배우’로 만든 요소였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 후배들을 향한 배려는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다.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서도 그는 늘 존중받는 선배로 남았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재발로 다시 투병에 들어갔고, 2022~2023년 공식 석상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며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국 영화사의 한 장을 덮다

180여 편이 넘는 작품, 아역부터 노장까지 이어진 전무후무한 커리어. 안성기는 한국 영화의 굴곡진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증명한 배우였다.

‘고래사냥’의 자유로운 청춘에서 ‘한산’의 묵직한 노장까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 쉬던 그의 시간은 이제 역사로 남는다. 한국 영화는 오늘, 가장 든든했던 얼굴 하나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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